Nikolai Chernyshevskii
1828녀녀 사라또프에서 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에 사라또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는 신학에 만족하지 않고 뻬쩨르부르그 대학에 진학해 슬라브 문헌학을 전공했으며, 사회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1851년 고향에 내려가 교사 생활을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유와 혁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당국의 혐의를 받아 2년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다시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온 그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미학적으로 해석한 「현실에 대한 예술의 미학적 관계」라는 석사 학위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계기로 평론 활동에 뛰어들었다. 잡지 《동시대인》에 평론을 기고하다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그가 편집장이 되면서 《동시대인》은 사회 정치 평론에 주력하였고, 급진적 지식인들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에 그를 위험한 지식인으로 지목해 예의주시하고 있던 경찰은 1862년 그를 체포해 뻬뜨로빠블로프스끄 수용소에 투옥시켰다. 그는 수용소에서 정치 사회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는데, 검열관들의 부주의로 이 작품은 《동시대인》지에 연재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자 당국의 감시는 더욱 심해져, 그는 여생을 거의 전 부 강제 노동과 유배 생활을 하며 마쳐야 했다. 약 20녀 년간의 유형 생활 끝에 1889년 고향인 사라또프로 돌아왔느나 넉 달 만에 사망했다. 저서로는 대표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롯하여 『프롤로그』(1856), 「철학에 있어서의 인류학적 원칙」(1860), 『주소 없는 편지』(1862), 『알페레프』(1862) 등이 있다.